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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rt Grid/스마트 그리드 뉴스

한국은 '전기차' 전쟁터

아직은 상용화 시점이 멀게만 느껴지는 전기차를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이후부터는 흔히 볼 수 있게 될 전망입니다. 국산 완성차 업체는 물론이고, 해외 자동차 업체들도 잇따라 한국에 전기차 출시계획을 내놓으며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인 기아차 레이 EV에 이어 2014년 상반기에는 현대차와 기아차 브랜드로 각각 준중형 전기차를 출시할 예정이고, 르노삼성의 경우 현재 르노 본사로부터 수입해오고 있는 SM3 Z.E.를 내년부터는 국내 부산 공장에서 생산하면서 일반인 대상 전기차 시장에 본격 뛰어들 예정이며, 한국지엠도 쉐보레 볼트와 크루즈 전기차, 스파크 전기차의 국내 시장 출시를 준비 중입니다.


해외 업체 중에서는 폭스바겐이 가장 적극적입니다. 독일 폭스바겐그룹은 18개 전기차 전략국가 중 하나로 한국을 선정하고 2014년 한국 시장에 순수 전기차 도입을 추진할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첫 도입 차량은 골프 블루-e-모션이 될 예정입니다.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여있는 유럽 국가들을 제외하고 폭스바겐의 전기차 전략국가로 선정된 나라는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호주 등 5개국에 불과합니다.


BMW도 양산형 전기차 시리즈인 'i시리즈'의 한국시장 출시 시기를 가늠하고 있습니다.


<'레이 EV' vs 'SM3 Z.E.' vs '골프 블루-e-모션'>

이들 중 국내 시장에 이미 출시됐거나 시승행사 등을 통해 구체적인 성능이 검증된 모델로는 기아차의 레이 EV, 르노삼성의 SM3 Z.E., 폭스바겐의 골프 블루-e-모션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이들 모델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첫째는 기존 내연기관 기반의 차량을 전기차로 개조한 모델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내연기관과 다른 형태의 전기차 부품을 장착하느라 상당한 고민을 했다는 점입니다.

전기차를 위해 새로운 차체를 개발하는데 있어서도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소요되지만, 기존 내연기관 기반의 차량에 전기차 구동체계를 적용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조사들이 기존 차체를 고집하는 이유는 소비자들에게 전기차의 생소함을 덜어주기 위함입니다.


폭스바겐코리아 친환경차 부문 관계자는 "전기차에 적합한 차체를 만드는 게 기술적으로 더 쉬울 수 있지만, 그 경우 소비자들의 이질감이 커질 우려가 있다"며, "골프 블루-e-모션은 인기 차종인 골프의 대중적 이미지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레이 EV와 골프 블루-e-모션의 경우 해치백의 차체를 이용했습니다. 배터리 등 부피가 많이 나가는 부품을 얹고도 기존 내연기관 모델과 비슷한 실내공간과 트렁크 용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간활용성이 좋은 해치백이 유리합니다.


반면, 르노삼성은 SM3 Z.E.에 세단형 차체를 선택한 대가로 길이를 13cm나 늘려야 했습니다.


성능은 차급을 감안한다면 엇비슷합니다. SM3 Z.E.는 가장 넓은 실내공간이 장점입니다. 전장(4750㎜)이나 전폭(1810㎜) 모두 다른 모델보다 큽니다. 대신 공차중량(1565kg)이 가장 높은 관계로 동력성능은 같은 준중형 급인 골프 블루-e-모션에 비해 다소 떨어집니다. 


골프 블루-e-모션은 최고출력 116마력, 최대토크 27.6kg·m 등 대부분의 동력성능에서 다른 차종을 압도합니다. 최고속도는 세 모델 모두 135km/h로 동일하지만, 이는 안전속도 제한을 걸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습니다. 


자동차로서의 상품성은 레이 EV가 가장 떨어집니다. 차체 크기도 가장 작고, 출력, 토크, 주행가능거리 등 모두 가장 낮습니다. 아무래도 경차다 보니 준중형인 다른 모델들보다 제원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승부처는 레이 EV가 아니라 현대·기아차는 2014년 상반기 양산모델 출시를 목표로 준중형 전기차를 개발하고 있고, 이때는 같은 차급인 SM3 Z.E.나 골프 블루-e-모션보다 높은 제원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작방식·성능 이질감 없지만, 주행가능거리 문제>

세 모델 모두 동일 차체의 가솔린 모델에 비해 최고출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최대토크는 높습니다. 전력을 공급받음과 동시에 최대토크를 내는 전기모터의 특성상 정지상태에서의 가속력이 높은 것도 세 모델의 공통점입니다. 


출시 시점을 전후해 세 모델을 모두 시승해 본 결과 조작 방식이나 동력성능에서 가솔린이나 디젤 차량과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정숙성이나 순간가속능력은 가솔린·디젤보다 뛰어나 시내도로 주행에서는 장점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문제는 역시 내연기관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은 주행가능거리입니다. 세 모델 중 주행가능거리가 가장 긴 골프 블루-e-모션도 150km에 불과하고 서울에서 대전까지도 한 번에 가기 힘든 수준입니다. 


제조사들은 전기차를 개발하는 데 있어 항상 주행가능거리와 에너지소비효율 사이에서의 절충점을 찾기 위해 고심합니다. 주행가능거리를 길게 하려면 배터리 용량을 늘려야 하는데, 배터리 용량을 늘리면 무게도 늘어납니다. 무게의 증가는 에너지소비효율의 저하, 가솔린차로 치면 연비의 저하로 이어집니다.


결국 배터리 셀을 잔뜩 달아놔 봤자 배터리 자체의 무게 증가에 따른 에너지소비효율 저하로 실제 늘어나는 주행가능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 셈입니다. 이 부분은 배터리 제조사들의 기술력 향상에 따른 무게·부피 대비 용량 확대 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충전 인프라 구축인데, 주행가능거리가 아무리 길어도 충전소가 드문드문 흩어져 있다면 활용성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는 자동차 제조사들보다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더 필요한 부분입니다.


<왜 한국인가?>

주행가능거리와 충전인프라의 한계는 전기차 분야의 영원한 숙제지만, 한국이 전기차 분야의 테스트 베드로서 적격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은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인 2000여만명이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 지역에 밀집한 특성을 갖추고 있고, 좁은 지역에 인구가 밀집해 있으면 운행거리가 짧아집니다.


이는 주행가능거리가 짧은 전기차의 핸디캡을 어느 정도 만회해줄 뿐 아니라, 충전인프라를 구축하기에 유리한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르노삼성 자체 조사에 따르면, 한국 차량 보유자 중 하루 운행거리가 60km 미만인 이가 전체의 87%에 달합니다.


세계적인 배터리 제조사들이 한국에 모여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다른 기술 분야에서도 그래왔듯 초기 전기차 상용화 단계에서는 배터리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해당 배터리 제조사가 국내에 있는 게 유리합니다.


한국에는 LG화학, SK이노베이션, SB리모티브(삼성-보쉬 합작사) 등 세계적인 배터리 제조사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기아차의 경우 레이 EV의 배터리를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공급받고 있고, 르노삼성은 내년부터 부산공장에서 생산되는 SM3 Z.E.에 LG화학 배터리를 장착할 예정입니다.


윤동훈 르노삼성 EV 브랜드매니지먼트팀장은 "전기차 사업을 진행하는 지역에 우수한 배터리 공급업체가 있다는 것은, 소비자에게 빠른 A/S가 가능하고, 기술적 문제점이나 보완 사항이 발견될 경우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